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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생각./Essay

비 오는 날

Blindr_grey 2018. 12. 30. 17:28

2017-07-11


비가 온다. 장맛비다. 아침부터 가늘게 내리던 아이들이 어느덧 조막만해지더니 장대가 되어 내리고 있다. 빗무리로 가득차서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내리는 비가, 바지 밑 단을 축축히 적신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게 아닐까 싶다. 며칠전부터 이어진 장마 예보에 가장 큰 우산을 챙겨 나갔지만 역부족이었다. 머리와 가방 언저리는 젖지 않았지만 우산 끝자락이 닿지 않은 아래는 도리가 없다. 그냥 비가 오니까 젖는 수밖에, 흠뻑.


어차피 젖기 시작한 거 별로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첨벙대며 걸었다. 바지가 젖든, 양말이 축축해지든, 신발이 물컹해지든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우산 위를 때려대는 빗소리는 우박마냥 둔탁했고 내 귓가엔 비긴어스의 Falling Slowly가 들려온다. 이소라의 애절한 목소리와 윤도현의 먹먹하고 잔잔한 협음이 나를 감정의 깊은 곳으로 데려간다. 내리는 비는 이리도 빠른데 노래는 느리다. 젖은 신발과 양말이 물 먹은 스펀지 마냥 질퍽해질 때쯤이야 집에 도착했다.

송이송이 맺힌 물방울을 툭툭 털고 우산을 곱게 접어 문 밖 손잡이에 걸어두고는 집으로 들어와 신발을 벗었다. 젖어서 질펀한 신이 가까스로 벗겨지고 양말을 벗어 맨발로 걸어들어왔다. 젖은 양말을 빨래 더미에 두고는 수건으로 발을 훔쳤다. 그제서야 토도도독, 토도독 거리는 빗소리가 창 밖에서 들려온다. 다행히 창은 닫고 출근한 덕에 창가에 책도, 스탠드도, 가방도, 의자도, 책상도. 어느 것 하나 젖지 않고 무사하다.
글을 쓰다보니 생각의 흐름을 따라 쓰고있는 느낌이다. 시작은 비 오는 느낌을 글에 담아내고 싶었던 건데, 펜을 놓고 고개를 들고 떨어져 다시 보니 일기를 쓰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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