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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1


2015년 4월 23일.

오래전으로 부터의 이야기다.


당시의 나는 고3이었고,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기숙사의 일상은 평일과 주말로 나뉜다.

평일은 아침 6시 기상, 그리고 점호, 아침식사가 연이어진다. 그러고 방으로 돌아오면 6시 30분쯤. 그 이후로 알아서 씻고 늦어도 7시 50분에는 기숙사에서 나가야 한다. 원래는 7시 30분에 나가야하지만 어디나 지각생들은 있고, 사감선생님의 방망이는 불을 뿜어야하니 20분의 여유 시간이 주어진다.

그렇게 등교를 하고, 야자를 마치고 돌아오면 저녁 10시.

15분간의 하교 후 정리시간이 주어지고 다시 1시간의 기숙사 특별 학습시간. 11시 15분에 끝이나면 15분내에 씻고 30분에는 취침. 물론, 야간 독서실은 별도 운영이라 공부할 사람은 추가로 공부하기.


그게 내 고등 3년간의 평일 생활이었다.


그리고 주말.

평일보단 1시간 늦은 7시 기상, 점호, 식사. 그리고 평일보다 조금은 더 어유로운 아침 준비시간을 보내고 9시 부터 12시까진 주말 오전 학습시간(혹은 오후 컴퓨터방 사용을 위한 노동의 시간)을 보내고 점심 식사, 1시간의 휴식. 다시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오후 학습시간. 그러고나면 6시부터 다시 저녁식사시간이 주어지고 2시간 가량의 티비 시청이나 가끔 사감선생님이 기분이 좋아서 비디오를 빌려주면 1층 로비에서 단체로 관람을 한다.


기숙사에 있는 티비는 딱 2대였다. 하나는 사감실에 있는 사감선생 전용의 티비. 그리고 나머지는 주말 저녁 식사 이후 쉬는 시간에나 허용되는 로비의 꽤나 큰 프로젝션 티비. 초,중고교 교실에 하나씩은 있던 그 티비다. 화질도 구리구리한게 쓸데없이 덩치만 큰 그 티비.


그리고 그 날은, 정말 우연히도 누군가 MBC를 그 날의 채널로 선택해놓았다. 애초에 채널 선택권이란 그 날 저녁 식사를 가장 빨리 마치고 자리를 잡아서 티비를 켠 누군가의 손에 좌우되곤 했다. 식사를 그리 빨리 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늘 밥을 먹고 오면 누군가는 티비를 켜놨었고 많은 기숙사생들이 차디찬 대리석 로비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티비를 보고 있었다. 하루 왠종일 호형호제하지 못 하는 홍길동마냥 강제라고 부르지 못 하는 학습시간을 거치고 유일하게 가지는 휴식시간이었으니, 대부분이 바보상자 앞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차피, 이거 고작 2시간을 쉬고나면 또 저녁 자율학습시간이니까.


그렇게 그 날도 밥을 먹고 로비로 들어서는데 티비가 눈에 들어왔다.

누렁이 황소를 상대로 줄다리기를 하는 하얀색 쫄쫄이 들이 티비에 나오고 있었다.


뭐야 저 미친 짓거리는?


이게, 내가 처음 본 무한도전의 모습이었다.

시간이 한참 흘러서야 그게 무한도전의 1화, 혹은 무한도전의 전신인 무모한 도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괜한 부심이 생겼다. 야, 나 무한도전 1회부터 본 골수 시청자야라는, 어디가서 입 밖에 낸 적은 없지만 속에 잘 꿍쳐든 꼰대같은 꽁한 부심.


그 뒤로 그 사람들은 더 이상한 짓을 했다.

전철과 달리기를 하고, 목욕탕에서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햇볕 쨍한 날 잔디 밭에서, 약국에 가면 주던 100원짜리 요구르트를 가운데 두더니 퀴즈를 내고 정답을 말하려고 점 처럼 보일만큼 뛰어갔다 돌아온다. 정답을 맞추더니 지네끼리 다투기 시작한다. 단어를 거꾸로 말하는 게임을 하더니 두유에서 멈칫하기도 하고 산타의 선물이라고 열었더니 수염 꺼먼 연예인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고 휴가라며 출연자들을 데려가더니 사람 하나 없는 섬에 떨구고 느닺없이 서바이벌을 진행한다. 자기네끼리 탑을 쌓아 올라서 야자수를 타고 그 와중에 긁혀서 피가났다며 아파아 하면서 웃는 돌아이도 있다. 아이스크림 한 스쿱을 얼굴로 받더니 그걸 햝아 먹겠다고 서로 덤벼든다. 바나나 하나에 목숨걸고, 봅슬레이를 연습한다더니 실내 스키장에서 왠 박스카를 타고 내려온다. 근데 그러더니 진짜 국가대표 결정전에 참여한다. 130km가 넘는 중력가속도 3G를 온 몸으로 받아들더니 엉엉 운다. 그리고 그걸 본 사람이 2018년 평창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다.

댄스 스포츠를 몇 달간 연습하더니 실전 무대에서 실수하고 울더라. 난데없이 멤버들을 서울 각지에 떨구고 텔리파시를 보내 서로의 추억의 장소로 모이라고도 하고 느닷없는 꽁트를 벌이며 티격대격댄다. 출연자가 몇 시에 오나, 지각은 하지 않는가를 대놓고 시계를 세워두고 잔인하게 거기에 출석 스티커를 붙인다. 늦으면 이래저래 변명해대는데 그 변명들이 참 밉지 않다, 맛있다.

사건사고도 많았고 말도 많았다. 미국가서 요리한다더니 담뱃재 맛이 나는 전골을 끓이기도하고 김치전을 마음대로 굽다가 초청한 셰프와 이견으로 시끌벅적해지기도 한다. 결혼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결혼하고 심지어 2세끼리 경쟁을 붙이자는 특집도 나온다. 비가와서 야외촬영이 무산된 날이면 친구들을 불러 실내에서 논다. 친구들을 불러놓고 몰카라며 업고 뛰어나간다. 그런 걸 누가 속냐, 하는데 그런게 또 참 재밌다. 브라질로 출국해 비어있는 친구 집에 들어가 방송을 하고 전화로 허락을 얻는다. 방송사 파업으로 촬영을 진행하지 않아도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방송을 준비하고 아이디어를 쏟는다.

하다하다가 더 좋은 방송을 만들자며 자출해서 지하 아지트까지 만든다. 인터넷 방송에서 메이커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며 신나하고 때리면서 즐거워한다. 번지점프대 위에서 하루를 묵기도 하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김상득씨를 찾으러 알래스카에 간다. 전혀 얘기치 못 한 곳에서 전혀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예상따위는 날려버리는 웃음을 준다. 예능이라더니 영화감독 데려다 앉히고 작년 한해 가장 핫 한 작가를 모셔와 드라마를 찍고, 몇 년간 꽁트삼아 하던 컨셉을 기초로 뮤지컬을 찍는다. 한 번은 제대로 된 콘서트를 준비했다가 무산되기도 했다.

2년에 한 번은 가요제를 하며 홀수년마다 시청자를 설레게 했고 관객이 모두 퇴장한 무대에 홀로 내려앉은 스포트라이트아래에서 말하는대로라는 명곡을 남겨두기도 했다. 누군가들에겐 추억으로 남았을 가수들을 설득하고 간청해 무대를 꾸미고 많은 전설들이 무대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그 안에 풍덩였고 감사해했고 울었고 함께했다. 그 특집을 보며 언젠가 이 프로그램도 10년도 훌쩍 지난 그쯤에 어느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 소환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떠올려 봤다.

언급하기 시작하면 밤을 새고도 모자랄 만큼 이루 말할 수 없는 시간들이 그들과 나에게 있었다. 몇 년 전 친구와 이 프로그램을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하루에 1편씩 봐도 1년이 넘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계속해서 방송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서 신기해했었다. 그리고 그 방송이 모두 오늘까지 총 563회. 그 기록들을 고스란히 담아 달력으로 만들고 상술처럼 팔아재끼더니 판매수익 전금을 기부한다. 그러니 안 살수가 없더라. 매년, 다이어리와 캘린더를 구매해버렸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아저씨들이 레슬링을 한다며 설치더니 꺽이고 조이고 삐그덕대며 몇 달을 고생, 아니 해를 넘겨 고생하더니 겨우 방송을 내보내더라. 아니, 방송이 없어지면 어쩔려고 저렇게 장기프로젝트를 하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런 게 한두개가 아니었고 그게 전부 그들의 무한도전이었다. 때론 아픈 역사의 단면을 잘라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사회적인 비판도 서슴치 않으며 예능인지 다큐인지 소비자고발인지 알 수 없는 장르를 보여주더라. 그러고보니, 이 프로그램의 메인 수식어는 리얼 버라이어티였다.


1박 2일과 패밀리가 떴다, 런닝맨, 남자의 자격등 많은 버라이어티가 탄생하기 시작했다. 누구하나 반박하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 모든 예능의 시초는 이 프로그램이다.


2007년에 재수를 할 때, 난 나한테 가혹한 시간을 보냈었다.

아침 8시에 일어나면, 부모님이 일을 나가며 차려놓으신 아침밥을 먹는다. 그러곤 독서실이 문을 여는 9시에 맞춰서 집을 나선다. 공부를 하고, 식사시간 마저 아까워서 매끼니는 삼각김밥을 씹으며 책을 봤다. 살랑이는 봄바람이나 뜨거운 여름 해, 설레는 가을하늘 같은 건 전혀 못 느낄 정도로 1년을 독서실 골방에서 보냈고 독서실이 문 닫는 새벽 2시에야 집에 도착해 그날 한 공부를 복습한다. 일을 마치고 피곤한 부모님은 이미 주무시고 째깍이는 시계소리를 들으며 새벽 4시, 혹은 조금 더 공부를 한다. 해가 뜨는 시각에 잠을 청하고 다시 8시에 일어난다.


그게 나의 2007년이었다.

나를 망치고 보냈던 시간이고, 언제나 나의 ‘열심’의 기준이 되는 300일의 시간.


그 시간 속에서도 단 하루, 예외를 두던 날이 있었다.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던 새벽.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토요일 저녁이 지나 일요일 아침을 기다리던 주말의 밤.

그 밤이면 언제나 평소보다 이른 새벽 1시에 독서실을 나서고 독서실 아래 편의점에서 캔맥주 2개와 과자거리를 산다. 일주일을 털어대듯이 발을 차며 집으로 돌아오고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 몇 시간 전 방송된 프로그램을 보며 맥주캔을 뜯는다.


치익, 따악.


그 소리에 맞춰서 화면에서 6명의 남자가 외친다.


무한, 도전

군대에 있을 때는 또 그랬더랬다.

휴가나 외박을 나오면 무한도전을 챙겨보며 시간을 보내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외박을 나와서 PC 방이나 모텔에서 밤을 보내더라도 VOD를 통해서 밀린 무한도전을 보며 킬킬거렸고 휴가를 나오면 집 안 가득 간식을 쌓아두고 까먹으면서 누워서 딩굴며 무한도전을 봤다. 매회, 매차 빼놓지 않고 챙겼다. 전역을 하고 학교를 다니면서도 토요일 저녁이면 무한도전을 봐야했고, 혹시나 놓쳐서 중간쯤부터 봐야할 때나 집중을 해서 볼 수 없다면 아예 보질 않았다. 그래서 토요일 저녁 식사를 하다가 집에서 티비 채널이 무한도전이면 오히려 KBS나 SBS의 예능으로 슬적 채널을 돌리곤 했다. 내가 집중해서 볼 수 없으니까. 처음부터 보질 않았으니까. 적고보니 이건 뭐 거의 성물 수준으로 취급한 거 같은 느낌이기도 하네. 근데 그래도 무한도전 만큼은 그랬다.


굳이 누군가 왜 무한도전이었냐고 묻는다면, 왜 무한도전이 아닐 수 있냐는 게 대답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왜 무한도전일까. 왜 무한도전이었을까. 왜 무한도전이어야 했을까.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하는 사람들의 매력에 끌려버린 건지, 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동질감을 느낀 건지, 대체 이 프로그램이 뭐가 재밌어서 그렇게 매주 빠지지 않고 챙겨볼 정도로 빠져있는건지. 논리적 합리적 명시적으로 글을 써보라고 한다면 나는 그 종이를 백지로 제출하는 것이 내 나름의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무한도전이 종영을 했다.

공식적으론 시즌 1의 종영이지만, 출연자들의 말마따나 누가 시즌 1을 13년이나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563회


사실 굉장히 갑작스러운 종영이었다. 처음엔 늘 그렇듯 찌라시일거라고 생각했고 혹은 이전과 같은 잠깐의 휴식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진짜 종영이었다. 안녕 이라는 단어를 꺼내야 하는 순간의 다가옴이었다.


이게 무슨…?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켠으론 그래 이제 쉴 때가 되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무한도전을 바라볼 때면 삐그덕대는 수레바퀴를 억지로 땜빵질해가며 달려가는 마차같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가야하고, 가야해서, 가야하니까 가는 느낌. 어디가 목적지인지도 모른 채 주변에서 보채는 시선들과 실려진 짐의 무게, 계속되는 채찍질의 채찍마저 낡아서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위태함, 그리고 그 낡은 채찍에 재촉받는 말들. 쉬어가고 싶다, 쉴 시간이 필요하다고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하던 김태호PD가 있었고 재충전이 필요해보였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상황들. 이러다 탈이 나는 건 아닌가 탈선을 하는 건 아닐까, 바퀴가 부서져서 영영 달리지 못 하는 폐기처분의 마차가 되는 건 아닐까,염려하고 걱정하던 시간들.


그 시간의 끝이 다가와 결국은 마부와 마원들이 마차를 멈춰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리라.


무한도전의 종영을 멈춰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등록되었단 소식에, 애틋하면서도 이제는 놔주고 이해해주는 게 옳은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걸 청와대에서 개입한다는 거 자체가 언론에 입김을 불어넣는건데..이건 대체 어떤 정신나간 놈이 올린 거야…라는 생각도 했고…


무한도전이라는 건 우리 세대, 우리 사회에선 그 이름만으로도 영향력있는 브랜드가 되어있다. 어느 날 기업의 PPL 담당자들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무한도전 만큼 영향력있는 브랜드를 찾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PPL을 한 번이라도 따내려면 줄을 서야 했고 방송 처음에 들어갈지 전체에 들어갈 지에 대해 논의되는 계약금도 천지차이라고 했었다.

일개 예능이 그러기 어렵다는 말도 있었고, 무한도전을 기점으로 예능을 일개로 편입시키는 게 불가능하게 되었다고도 했었다.


무한도전은 그만큼의 힘이 있고, 힘이 있는 만큼 책임이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래서 마음고생도 많았고 한 주 한 주 라이브나 마찬가지인 방송 스케쥴의 출연진이나 제작진이나 스트레스도 장난 아니었을 거다. 내 일로 따지자면 매주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한다거나 새로운 기능을 첨가한다거나, 글쟁이로 치면 매 주 시 하나, 단편 하나를 무조건 탈고해야 한다는 건데. 만들고 쓰기만 하면 어디 끝인가. 서슬퍼런 칼날을 들이민 시청자들이 이번 주는 재미있네 재미없네 저번 주가 나았네, 이런 사회적 메시지는 왜 던지는 거며 쟤는 출연 안 했으면 좋겠다, 등등. 호인지 불인지 알 수도 없는 작두를 타고 척도를 가늠하려 드는데 얼마나 살얼음판을 다니는 느낌이었고, 얼마나 많은 짐을 앓아야했고 그래서 얼마나 부담이었을까.


그걸 무려 13년이나 해온거다.

고3이었던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해서 서른 둘의 직장인 5년차가 되버린 시간동안 그들은 그 굴레에서 매년,매달,매주,매일을 달려왔다.


회차로는 563회.


그렇기에 나는 무한도전의 종영에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친다.

멤버들과 제작진이 눈 앞에 있다면 고생했고,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허리굽혀 고개를 숙이고 그걸로도 모자라, 절을 하고 그 상태로 이별의 슬픔으로 울다 일어나지 못 할 정도로 나는 무한도전을 좋아하고 떠나보내고 싶지 않지만, 그들이 여기까지 라고 한 결정에 내가 간섭을 할 여지는 원래부터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그들이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던 것도 내가 간섭해서 시작한 게 아니니까.


고생했고, 고생했습니다.


나도 사실은, 다음주 토요일에 다시 무한도전이 보고 싶고 목요일이면 길을 걷다가 혹시나 시내 촬영을 하는 무한도전을 보게 되진 않을까 생각을 하지만. 아쉬워하며 마지막 방송을 지켜봤다. 아마, 한동안 이 사람들이 떠들고 웃는 모습은 각자의 다른 방송에서 보거나 재방송으로나 보게 되겠지.


마지막 방송이 종료된 뒤, 무한도전의 인스타를 보며 처음으로 댓글을 달았다.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하동훈, 양세형, 조세호. 이렇게 여섯명이 나온 사진은 그 옛날 브루클린 다리를 배경으로 찍었던 사진만큼 내 시선을 끌었다.


무한도전은 어느 개인의 힘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아니다.

유재석만의 개인 역량도, 김태호PD만의 역량도, 그리고 무한도전을 거쳐간 다른 멤버들 각자만의 힘으로 탄생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훌륭한 연기자들과 제 몫을 거뜬히 해내는 스태프들. 뛰는 출연진들 따라 헐떡이던 카메라맨들과 통찰하는 작가들. 밤 늦은 시간에도 조명을 켜뎐 조명스태프와 소음을 화음으로 바꾸던 오디오 스태프. 코디들, 매니저들등. 많게는 세자릿수에 달하는 제작진들과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봐 준 나와 같은 시청자들. 각자가 놀아도 멋있지만 어울려 놀아 합주를 완성시키는 오케스트라 같은 그들과 나와 우리의 공연으로 무한도전은 멋있어 질 수 있었고 국민 예능이란 찬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렇게 13년동안 우리의 곁에 있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작진들과 연기자와 나와 같은 우리에게 고생했고, 감사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그들이 보지 않더라도 내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이리저리 글이 또 새기 시작하는데,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수치로 말하는 13년이란 햇수가 너무 오래되서가 아니라, 내가 그 프로그램의 1회때부터 줄 곧 시청해 온 골수빠돌이 시청자라서가 아니라, 여섯 명들의 웃고 울고 떠들고 화내고 시끌벅적한 쇼를 더 이상 볼 수 없음이 서글퍼서가 아니라.


언제부터라고 핀을 꽂아 잴 수는 없지만, 그렇기에 내가 인지할 수도 없을 정도로 오래전 부터 나와 함께 내 안팎의 평지풍파를 같이 맞이하며 넘으며 겪어왔고 내가 나로써 인지하고 생각하며 존재하는 동안 기울어져 갈 때마다 내가 숨을 내 쉬고 기댈 수 있었던 것들 중, 한 폭을 차지하던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다. 고마움 때문이다.


꽉 차있던 이 자리를 떠나보내면 다시 그 자리를 채울 무언가가 돌아오거나, 생기거나 어찌 되었든 메꿔지게 되어 있다는 건, 우리내 삶은 다시 돌고 돌아 제 자리이고 불균형한 것은 균형을 찾아 회귀하기마련인 것이니까. 불교에서나 볼 법한 윤회사상을 빗대어 말하는 것 같지만 굳이 그런 사상적 이론들이 아니더라도 서른 둘을 살아오면서 깨쳐가는 순리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듯 무한도전이 떠난 자리도 또 다른 무언가로 채워질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정하던 프로그램을 떠나보냄이 슬프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쓰는 글이 서두가 없이 방방뛰기 시작한다는 건, 마무리를 어찌 지어야 될 지 몰라서 혹은, 마무리를 짓고 싶지 않은 글이라는 것의 반증인데 지금이 딱 그러한 것 같다.

입으로는 그들의 떠남을 지지한다 하지만, 속으론 여전히 남아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들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 이제 슬슬, 마지막 문장으로 이 글도 그들과 같이 끝을 맺어야겠다.


감사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애쓰셨습니다.

13년간의 모든 멤버들과 모든 제작진들과 나와 같이 매주 토요일 저녁을 기다리던 많은 시청자들, 그러니까 우리 모두 감사했고 고마웠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무한도전.


낯간지럽고 쑥스럽지만, 이제 정말,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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