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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9


이준익 감독(이하 이준익) 인터뷰 기사를 봤다.

그게 누군데? 라고 물어볼 사람들을 위해 간략히 언급을 해보자면 그냥 영화감독이다.


물론 봉준호나 박찬욱처럼 글로벌 네임드라고 불리기엔 조금 애매하다. , 애매하단 거지 모자라다는 아니다. 기준으론 이준익 감독도 충분히 그들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간의 그의 작품을 보면 찍는 영화의 느낌이랄까 류가 다르다. 정확히는 충분히 능력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렇게까지 욕심을 부리는 영화를 찍는 느낌이 아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심검의 경지까지 터특한 무림의 은거고수 같달까.


이준익은 나에게 있어선이준익 영화 = 극장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아마 내가 배우의 이름이 아니라 감독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 영화감독일거다(,물론 심형래 감독도 있지만.. 사람은 예외로 두자)


대표작은 누구나 이름은 들어봤을 법한 왕의 남자.


대한민국 영화 사상 1000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고 이준기를 일약 스타덤에 올렸으며 덕에 예쁜 남자 신드롬이 일어나고 미녀들은 석류를 좋아해야했다던 영화가 바로 분의 영화다. 아직도 감우성과 이준기의 여기있고 거기있지 비롯해 마지막 줄타기 점프신은 마음 깊이 남아있을 정도의 영화다.


거시기해서 거시기한 거시기에 거시기 해불면 거시기하니께 거시기혀서 거시기 해불더라고, 라는 거시기 명대사를 남긴황산벌’, 중년의 아재들이 모여 꿈을 노래하는 활화산(feat.볼케이노) 밴드의즐거운 인생’, 흑백으로 담담히 그려내고자 했지만 영화에 담긴 감정은 담담하지 않았던 별을 헤는동주등등. 어느 영화를 떠올려도 작품이란 표현에 모자람이 없는 영화를 만드는 영화쟁이, 이준익이다.


영화쟁이 이준익, 단어가 글을 쓰게 계기다.


예전에 마비노기를 한창할 Gravity 라는 길드에 담았던 적이 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보내고 즐거웠고 슬퍼하고 화내며 지냈었다. 때에 대한 이야기들로 글을 써도 카테고리 하나를 별도로 빼야 정도로 나에게 많이 남아있는 시간들이었다.


당시에 함께 지내던 길드원 템펠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동갑내기가 있었는데 친구의 꿈이 만화가였다. 아마 덕력으로만 따지자면 탑레벨이 아닐까 싶은 이미지의 친구인데 당시 그림은 그나마 조금 그리지만 스토리텔링이 많이 부족했다. 전형적인 그림전문타입이랄까. 그랬던 템펠이 어느 , 종종 페이지에 단편을 올리던 나에게 협업을 요청했다. 쉬이 말하면 리퓨, 그림 템펠의 작품을 하나 만들자는거였다(당시 캐릭명이 리퓨였다)


그래서 나왔던 작품이 Team Gravity : First Press였었다(길드 이름이 Gravity 에피소드라고 First Press 라는 작명센스는.., 부끄러워) 많은 사연으로 인해 기획되었던 Third Press 까지는 연재하지 비운의 작품이지만, 그와 동시에 글쟁이 인생 최초의 완결작(1부는 완결했으니)이다. 아쉽게도 당시의 템펠은 의욕만 앞서는 녀석이라 글을 그림으로 옮기지 했고(글은 1부가 완결이 됐는데 그림은 프롤로그까지였으니) 다음 해에 애니메이션 특성화고로 편입인지 전학인지를 가서 그림 수련에 매진하기 시작했었다.


하여튼 그래서 당시에 템펠이 스스로를 칭하던 호칭이 그림쟁이였다.


쟁이라는 그것과 관련된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혹은그것이 나타내는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 지칭한다. 낮은 호칭이 너무 낯설고 마음에 들었던 나는 뜻에 따라 글쟁이를 자처했고 2화까지 올라왔던 우리의 만화에도 글쟁이 리퓨라는 닉네임이 새겨졌었다. 이후로 나는 글쟁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두고있고 취미는 글쓰기에 특기도 글쓰기로 적는 녀석이 되어있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글을 적고 생각을 담아내면서 때는 글을 쓰면서 먹고 살고 싶다라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말을 했다가 어머니한테 호되게 많이 혼났었다. 빌어먹고 있냐며, 말이 아니라 정말 뒤지게 혼났었다. 어리지 않은 2때의 일이지만 받은 상처는 꽤나 깊었고 나는 아직도 쉬이 현재의 상황을 내려놓지 하고 있다. 글도 원하는 때에 언제든 쓰는게 아니라 이렇게 시간이 틈틈이 쓰는 정도가 되었고 말이다.


그렇게 본업이 아님에도 나는 언제나글을 쓴다 포기치 여전히 어디서든 글쟁이를 자처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글쟁이라하면서 글쟁이가 아닌 내가, 이준익감독의 인터뷰에서 영화쟁이라는 표현을 보자마자 표현 자체가 너무 그립고 먹먹해져서 다시 이렇게 펜을 들고 글을 밖에 없었다. 이준익은 영화쟁이답게 계속해서 실패를 하면서도 영화라는 자신의 쟁이를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그는 왕의 남자라는 대작을 만들었고 덕에 연이을수도 있는 거겠지만, 그럼에도 그의 영화들은 흥행하든 흥행하지 하든 그의 색채가 뚜렷하게 묻어나는 그를 담고 있는 영화다. 그는 인터뷰에서 실패가 무섭다고 했다. 무서운데도 계속한다. 그가 영화쟁이라서, 영화를 업으로 삼았기에 계속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들었던 생각의 핵심은 글쟁이를 자처하던 나는 그의 앞에서 어디에 있어야 마땅한 존재인가 라는 거다. 외나무 다리라거나, 골목길에서라거나 그를 마주했을 나는 영화쟁이인 그의 앞에서 떳떳한 글쟁이로써 가슴을 펴고 앞을 바라보고 눈을 마주칠 있는가. 나는 지난 년간 글을 쓰고는 있었는가. 생각의 깊이는 어디였던가. 빠지지 하고 안주하지 않았던가. 짧은 마디 문구를 적고는 스스로 뿌듯해하며 만족이란 함정에 고개를 끄덕이진 않았던가. 하나의 주제에 논리를 정리할 있는가. 나는 창고 구석에 방치된 선물받은 식칼처럼 너무나도 무뎌져 있지 않은가


글쟁이로서의 나는 어디에 있는 건가.

나는 여전히 글쟁이인가.


얼마전 네이버에 개설해뒀던 블로그를 방문해봤다. 그리고 카테고리에 올려둔 개의 글들을 진지하게 읽어봤다. 지금의 나에게 종이와 펜을 주고 써보라한다면 과연, 정도의 글을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에 올라와있는 글은 대부분 군에 있을 글이다. 점심시간과 취침시간, 시간이 허용하는 모든 순간에 틈틈이 글을 썼다.


병영문학상에 제출도 해보고 불꺼진 내무반에서 모포를 뒤집어 채로 후레시 불에 의지해 끄적이기도 했었다. 당시엔 읽고 읽어봐도 마음에 들지 않는 필력을 탓하며 엉망이라 했던 글들이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정도의 조차 있을거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만큼 감정을 전달할 자신이 없고 쏟아내고 담아내고 표현 수도 없었다.


글을 읽으면 그때의 내가 어떠했는지, 어떤 감정이었고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가 너무 생생히 느껴져서 오히려 서글퍼졌다. 지금의 나는 내가 글에 나를 담아낼 있을까. 8년전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솔직하고 꾸밈없고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너무 미안해졌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아지지 않은 모습에.

그러면서도 글쟁이를 논하는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숙고해졌다.


나는 정말 나로써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글쟁이일까.

다시 8 뒤의 내가 글을 보면 또다시 미안해하게 되는 것일까.

나의 글은 내가 나일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고 있지 않은 나는 나일까.


그래서 나는 글쟁이일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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