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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사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첫 문단이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쓰고 지우고, 지우고 쓰고, 백스페이스 몇 번, ㄱㄴㄷㄹㅏㅑㅓㅕ 몇 번.

취미는 글쓰기입니다, 라는 멘트를 자기소개때마다 쓴 지도 한참인데 여전히 글을 시작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문장 한 줄, 단어 하나에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바뀔 수 있으니 늘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게 된다. 물론, 내림받은 것처럼 손가락이 알아서 움직여서 하얀 화면을 가득 채워줄 때도 가끔은 있다

(올림픽 주기 같은 쿨타임이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제가 무엇이든 글을 써보라고 하면 일단 어렵다, 라고 생각한다.

오늘 일었던 일을 글로 옮기는 것도 어려워서 매일 밤 어떻게 쓸 지 고민하며 펜을 돌렸던 어린 날을, 누구나 겪었을거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내가 오늘 겪은 일을 쓰기가 어려워서, 1장에 22줄이나 그어져 있던 일기장의 페이지를 보며 실증의 한숨을 내쉬었던 적이 있다. 그러다 꾀를 부려 만화 주제가로 일기를 때웠던 적도 있다. 똘기 떵이 호치 새초미 자축인묘...어쩌면 내가 십이간지를 다 외운 건 그때 그 일기 덕일지도 모른다. 

 

이젠 이거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면서요?

그때로부터 시간이 제법 흐른 지금의 나는, 그때만큼 글쓰기를 어려워하진 않는다.

쓸 때마다 글자수가 오버해서 어느 문단을 어떻게 잘라낼지부터 고민한다. 부적절한 단어를 들어내고 사미(蛇尾)는 없는지 살핀다. 조사를 어떻게 바꿔야 문장 흐름이 자연스럽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읽었을때 부드러우면서도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누락없이, 퇴색없이 전달될까를 고민한다.

...종종 이런 나를 주변 사람들은 외계인 보듯 한다.

 

글쓰는게...쉽다고??

 

몇 년전 모기업에 재직중일때 신입사원 연수의 지도선배를 다녀 온 적이 있다.

약 4주간의 합숙이었고 막바지에는 각자 선배들이 담당한 팀원(신입사원)들에 대한 평가를 써야하는 순간이 오는데, 당시 우리 팀원은 16명이었고 인당 최소 2,000자의 평가서를 써야했다. 그러니까 환산하면 총 32,000자...거기에 한 명 한 명에 대한 평가가 겹치지 않아야하기에 전부 다른 멘트와 표현으로 꾸밈새를 갖춰야했다. 그 소식을 들었을때 같이 선배역할을 했던 동료들은 그걸 어떻게 다 쓰지...? 라는 혼란속에서 나 혼자 태연했던 기억이 난다. 

 

그거, 뭐...그냥 쓰면 되지, 뭘.

 

글은 쓰면 쓸수록 는다. 

자전거 첫 페달의 굴림, 빙글대는 첫 한 바퀴는 누구에게나 어렵다.

하지만 계속 밟고 타고 쏘다니다보면 결국 누구나 자전거를 타면서 태연하게 전화를 받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글은 쓰면 쓸수록 는다.

이 또한 우리가 글을 써야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표현 매체로써의 글]

글이 좋은 단초적인 이유는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온전하게 담아내기에 너무 좋은 그릇이라서다.

때론 궁핍하게 간장종지에 밥 한 숟갈 같은 차림새도 있지만 때때론 상다리가 휘어질만큼 차려진 진수성찬 같은 글이 나오기도하니까.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가지의 표현을 하며 살아간다.

말로 의견을 나누고 손짓으로 가리키고 표정으로 기분을 전한다.

 

봐라,얼마나 진정성있는 표정인가.

글쓰기 또한 이런 표현의 창구로 우리는 곧잘 쓰곤한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위해 매일 썼던 일기에는 친구와 싸워서 화가 났던 일이 적혀있기도하고 비엔나 소시지가 급식으로 나왔는데 친구보다 2개나 더 받아서 기뻤던 일도 적혀있을거다. 수줍게 건냈던 러브레터에는 설렘 가득한 문장이 담겨있을거고, 중간고사 시험지 여백엔 교수님을 향해 펼친 당찬 기말고사 포부가 적어 뒀을거다. 물론, 기말고사때는 다음 학기에...라는 서두로 시작했겠지만 말이다.

 

이처럼 글은 우리가 바라는 의도를 온연하게 풀어낼 수 있는 도구로 쓰여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은, 언제든 고칠 수 있다.

말은 뱉으면 담을 수 없고, 표정은 숨기지 못 하며, 손짓은 해버렸고, 시선은 가 있을 것이다.

 

반면에 글은 내가 쓰고 보여주고자 할 때까지 얼마든지 수정 할 수 있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문단을 자르고 옮기고 단어를 추가하고 읽어보고 지우고, 내 의도와 다르게 오해를 살 법한 문장이나 표현은 없는지 읽는 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몇 번이고 고민할 수 있다.

흔히 퇴고라고 말하는 과정을 수없이 거친 이후에야 탈고해서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

 

당장 이 글의 첫 문장을 되짚어보자.

'사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첫 문단이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그렇다, 지금 당신이 읽는 이 글도 내겐 첫 번째 글이 아니다.

이미 몇 번이고 쓰고 고치고 도르마무 도르마무한 글이라는 점이다.

 

그,그만해...!

그렇게 마침표를 찍은 글은,

결국 내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온전하게 풀어내어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되어준다.


[ 코딩 ==  글 ? ]

printf("Hello World\n");

처음 C언어을 배울때 까만 바탕에 흰 글자로 인사를 짓던 콘솔을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생각한 걸 얘가 보여주고 있잖아? 어쩌면 개발에 흥미를 붙인 건 코딩이란 것과 글을 쓴다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나는 종종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글자들을 사용한 단어, 단어들을 사용한 문장, 문장들이 모인 문단, 문단들이 모인 글이란 형태로 현현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속에 내가 가진 생각, 느낌, 때론 상황을 표현해냄으로써 읽는이에게 내 의도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그 글을 쓰는 목적이 된다. 우리가 개발을 하는 것도 한 발자국 물러서 넓게 봤을때 그 본질이 가진 목적을 이루기위해 현현해내는 방식이 글을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흐즈믈르그...

개발의 본질은, 결국 문제를 해결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가장 먼저 생각이라는 걸 한다.

 

이 문제가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히 분석을 하고 그 요구사항들을 해결할 방법들을 떠올려 본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결코 1개가 아니다. 수많은 방법 중 어떤 방식이 제일 좋을지에 대한 궁리,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이 실타래를 풀어나갔을지에 대한 고민, 꼬리를 물듯 이어진 그 생각의 끝에 다다른 결론을 우리는 코딩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머릿속에 있는 로직을 실체로써 구현해낸다.

 

때론 가볍게 들고다닐 수 있는 포켓북처럼, 때론 너무 무거워서 분권해야하는 전공서적처럼.

때론 몇천줄도 가벼이 넘는 문자로 이루어진 파일들을 통해서 말이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국어가 아닌 영어를 쓴다.

당연하게도 미국에 사는 이들과 이야기하고 소통하기 위해선 그들의 언어를 써야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내 머릿속에 떠오른 수많은 생각들을 상대방에게 올곧게 전달하기 위해 쓰이는 도구이고,

우리가 미국에서 그들과 대화하기 위해 영어를 사용하듯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아마도 컴퓨터와 대화하기 위해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언어들이 가진 규격화된 문법을 바탕으로 대화를 할 것이다. 중1때 처음 접했던 영문장 1~5형에서부터 내게 영어라는 벽을 실감하게 해 준 관계대명사와 have+p.p 등과 같이 약속된 규격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서로의 생각들을 교환한다.

 

미국인과 대화하기 위해 영어를 쓰듯 우리는 컴퓨터와 대화하기 위해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다만 입으로 뱉어내던 언어라는 도구를 활용하는 형태가, 코딩이라는 방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코딩이라고 명명되어진 이 글에는 우리의 의사를 컴퓨터에게 전달하기 위한 문법이 존재하고, 컴퓨터는 우리가 작성한 문자들을 읽고 해석해서 우리에게 어떤 액션을 보여준다. 때로는 그 액션이 우리가 의도한 방향 일 수도 있고 의도하지 않은 방향 일 수도 있지만, 요점은 우리의 의도가 내포된 글(코딩)이 상대방(컴퓨터)에게 전달된다는데있다.

 

그래서 이 문단의 제목을 Javascript 문법 기준으로 예상해보자면,

어쩌면 true라는 값을 리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true라면, 사실 여러분은 매일 글을 써왔던 셈이다.

 

글 쓰는 게 어렵다는 생각을 가진 채로 살아왔을지라도, 실상은 매일 글을 쓰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여러분은 그 어떤 직업보다도 글쓰기에 최적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매일 내 의도를 올곧게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정의하고 구현해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생각 할 필요가 없다. 글이라는 건 사실 되게 별 거 없는 거다. 손짓 발짓 몸짓과 같이 원초적인 의사전달 수단을 제외하고 우리가 가장 오랫동안 익혀 온 의사전달 수단은 말이고, 그 말을 자음과 모음들로 조합해서 단어로 문장으로 문단의 형태로 써내려간 그림이 글인 것이다. 

 


[ 개발자가 쓰는 글[0]  ]

모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을 때, 내가 겪었던 황당한 일화 중에 하나는 6연속 점점점 커밋이었다.

Git 이력을 보는데 연속한 6개의 커밋메시지가 '...' 으로 되어있었다.

(거짓말 같겠지만, 나도 이게 거짓말이길 바랬었다)

 

뭐하시는 분이세요...?

보통 커밋이라는 것은, 내가 이번에 개발한 사항들에 대해서 기록의 플래그를 꽂는 것이고 이때 커밋메시지에 어떤 내용을 개발했는지를 요약해서 적어야 한다고 나는 배웠다. 누군가는 메시지 한 줄로 설명되는 만큼이 하나의 커밋이어야한다라고하고, 누군가는 의존성을 가진 개발 일감들을 묶어서 하나의 커밋으로 쳐야한다고, 누군가는 당일에 한 분량만큼을 커밋으로 규정짓기도 한다. 이처럼 커밋의 단위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내가 짚고자하는 포인트는 단위가 아니라 커밋메시지에 있다.

 

커밋 메시지가 개발한 내용을 내포해야한다라는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커밋 메시지만 보더라도 어떤 개발이 이뤄졌는지 분명하다

물론 그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Jira 티켓 번호일 수도 있고 한 줄로 요약했을수도 있고, 어떤 방식이건 결국 상관은 없지만 점점점과 같은 무치한 메시지는 결코 남겨서는 안 된다. 커밋 메시지의 핵심은 이 커밋이 무엇을 위해 개발되었는지에 대한 의도를 남겨놓는 것이다. 이 의도는 결코 타인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지금 내가 개발한 건일지라도, 한 달 뒤의 내가 이 건에 대해 명확히 기억한다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시점이 왔을 때 지금의 의도를 담은 커밋 메시지는 시간이 흐른 뒤의 나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것이고, 이는 나와 함께하는 내 팀원들에게도 분명하게 도움이 된다.

 

미래의 나를 위해 커밋을 잘 남겨두자

커밋 메시지도 결국은 글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 의도를 전달하고자하는 매체로써, 커밋 메시지는 분명하게 쓰이고있다.

 

글이라는 대상을 떠올릴때 우리는 곧잘 장문들을 떠올리곤 한다.

수려한 문장들로 그득한 책을 채운 글들만을 글이라고 불리진 않는다.

작가 혹은 기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퇴고를 반복하며 탈고해내는 잘 완성된 글들.

흔히 그것들을 떠올리며 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린 날 숙제라는 떠밀림에 겨우 써야만 했던 매일의 초라한 내 일기장도 엄연히 글이고 전혀 다른 언어지만 컴퓨터와의 대화를 위해 작성하는 코딩 또한 엄연히 글이고, 고작 한 문장으로 끝맺음 짓는 커밋 메시지도 결국은 글인 것이다.

 

그 모든 것들에 당신의 의도가 담겨져 있을테니까.


[ 첫 술에 배부르기엔, 내가 좀 많이 먹어요 ]

코딩도 글이다, 커밋 메시지와 같은 한 문장도 엄염히 글이다.
여러분은 이미 글을 써오고 계셨다, 내 의도를 전달하고자 하는 매체로써 쓰이는 것들이 글이다.

 

...라고 이 글을 쓰고있지만 사실 쉬운데 쉽지않은 게 글이기도하다.

(이제와서?)

 

말을 배우고 써온지는 아주 오래됐지만 말을 잘 한다, 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많지않다.

글도 배우고 써온지는 제법 오래됐지만 글을 잘 쓴다, 라는 말을 듣는 사람도 많지않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글을 써야하는 이유를 설파하고 있지만 첫 문단에서 슬쩍 밑밥을 깔았듯이 나도 빈번히 글이 어렵구나, 라는 생각을 하곤한다. 특히나 모자란 필력을 여실히 느끼며 표현해야하는 생각이나 의도를 제대로 작성하지 못 할 때 그렇게 느끼곤 한다. 그리고 아직 탈고되지 않은 날 것의 이 글 또한 그런 모자란 필력을 여실히 느끼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중이다.

 

그리고 그 김에 이 글의 의도를 대놓고 직설해보자면

뭐라도 좋으니 써보셨으면 좋겠다, 라는 게 이 길고 긴 글의 커밋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시작이 제일 어렵다

어쩌면 글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리 어렵지 않을수도 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옛말에 굳이 기대지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예전부터 글을 써오고 있었다.

 

다만 그 형식이 코딩이었을수도 있고, 짧은 커밋 메시지였을 수도 있고.

단톡방에 시시콜콜하게 올라오는 잡설이나 찐친사이에 주고받는 흰소리였을 수도 있다.

근데 막상 '글을 써보라'라는 판이 깔리면 우리는 '글은 어려워'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일상에 여실없이 써오던 매체가 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인식의 허들이 세워져 마냥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굳이 잘 쓸 필요는 없다.

우리는 작가도, 기자도 아니다. 

그저 당신의 생각과 의도를 잘 녹여내는데만 집중한다면, 그 글의 형태가 어쨋건간에 당신은 글을 쓴 것이다.

혹 글쓰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고쳐쓰면된다. 

'사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첫 문단이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이 글의 첫 문장을 당신이 분명하게 기억했으면 좋겠다.


[ 별첨 : 개발자가 쓰는 글.length - 1 ]

글을 통해서 우리는 지식과 생각을 공유한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을 당신도, 내 생각을 나로부터 공유받는 중이다.

 

눈 정화 한 번 하시라고...

막상 글을 써볼까, 라는 생각으로 책상 앞에 앉았지만 무얼 써야할 지 갈피를 못 잡으시는 분들께 추천하고픈 건 일기다.

 

새로운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은 좀 더 어렵기마련이다.

하지만 일기는 내가 오늘 겪었던 일들이기 때문에 머릿속에 있는 기억들을 그저 꺼내기만하면 되다.

거창하지않아도 된다.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라는 문장을 늘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면 된다.

 

가령 예를 들자면 이렇게.

버스를 타려면 늘 저 육교를 지나야한다.

왕복 8차선의 긴 차선들 사이를 오작교처럼 띄워진 저 육교는, 칠월칠석에만 건널 일이 있으면 참 좋겠지만 여지없이 매일, 오늘도 내가 출근하며 건너는 곳이다. 때론 저 멀리 신호에 걸린 버스를 보고 육교위를 뛰어 건넌 적도 있고, 어느때는 센치해져서 육교에 기대 지나가는 차들을 멍하니 바라봤던 적도 있다. 

...뭐, 물론 그러다 또 신호에 걸린 버스와 정류장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보곤 여유없이 후다닥 뛰어내려가긴했지만.

 

10글자 남짓의 문장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엿가락처럼 늘려보면 글은 어느새 읽을거리만큼이 되어있다. 어릴때는 일기라는 게 아주 쓰기 귀찮은 숙제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왜 일기를 쓰게했는지 알 것만 같다. 누군가에게나 매일은 있을 것이기에, 있는 일들을 쓰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런 거 말구...

일기라는 주제를 우리가 편히 쓸 수 있는 이유는 매일 내게 쌓인 하루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내 머릿속에 있는 일들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거창하고 깊게 생각 할 필요가 없다는데서 우리는 좀 더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일기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고, 이게 익숙해지면 어떤 글이든 편히 쓸 수 있는 여력을 얻게 된다. 가령, 내가 평소에 일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 혹은 남들은 모를 것 같은 히든 피스가 아니라도 공유하고픈 것들. 흔히 기술 블로그 라고 부르는 형태로 글을 쓸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일기는 이 걸 위한 빌드업이었ㄷ....)

 

대학생때부터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나도 개발을 하면서 숱한 글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왔다.

stack overflow, okky등과 같은 네임드 사이트에서 이름모를 블로그들까지.

막힌 벽을 보듯 답답할 때 구글링을 통해 찾았던 그 글들이 없었다면, 마셨던 수백번의 고배에 나는 여기까지 오지 못 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내가 절실히 깨달은 점은 나 혼자 아는 건 쓸모가 없다라는 점이다.

 

여러 사람 괴롭힌 아저씨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것이 있다.

지금은 증명되었지만 수학계에 난제 중에 난제로써 357년만에 증명이 된 논제인데, 이와 관련된 책을 보면 아주 밉쌀스런 인물의 일화가 적혀있다. 그는 뉴욕 지하철역 벽면 한 켠에 이런 문구를 남겼다고 한다.

나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해냈지만...약속시간에 늦어 지하철을 타야하기에 미처 여기에 옮겨적지 못 했다

 

논제를 던진 이나, 지하철에 탄 이나 아주 그냥 대환장파티다.

 

페르마는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글을 남기지 않았고, 이 증명은 350여년이 지나서야 영국의 한 수학자에 의해 증명되게 된다(정확히는 첫 증명이후 오류가 발견되서 더 걸리긴 했지만...) 만약 페르마가 그냥 글로 써서 남겨뒀으면 35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 많은 수학자들이 고통받지 않았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혼자만 알고 있는 지식은 결국 쓸모가 없다.

내가 접했던 수많은 기술 관련 글들을 그들이 공유해주지 않았다면 나를 비롯해 많은 개발자들이 고통속에 끙끙댔을 것이고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피쳐 폰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내가 아는 것을 남과 함께하는 것은 중요한 거고, 이는 흔히 공유지식이라는 말로 정의되고 있다.

 

개발 중심적인 썰로 이야기를 풀고있지만, 이는 단순히 개발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김치찌개가 먹고싶어서 네이버에서 검색해 본 레시피나, 여행지에 대한 정보, 심지어 맛집에 대한 리뷰까지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글로써 공유하는 것이다. 

 

22.06.29 ~ 07.10 지금, 도전하세요.

 

나 또한 내가 받은 공유 지식의 도움을 함께하고자 미진하지만 하나씩 둘씩 쓰기 시작했고, 종종 도움이 되었다는 댓글들로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보며 하나라도 더 아는 걸 공유하고파지곤했다.

 

흔히 이런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글을 쓸 때 염려하는 건

내가 알고 있는 게 틀린 답이면 어쩌지? 라는 걱정일텐데

이 또한 그렇게 공유함으로써 내가 잘 못 알고 있던 사실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반박시 니 말 맞음, 같은 치트키는 어떤가)

 

내가 옳게 알고 있던 내용이라면, 그걸 모르던 사람에겐 도움이 될 것이고

내가 잘못 알고 있던 내용이라면, 그건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아는 것을 공유할 수 있으면서,

누구나 사용해왔기에 언제든 활용할 수 있고 편히 접할 수 있는 매체가 바로 글인 것이다.

 

글이란 것의 허들은 그리 높지않다.

기역과 니은, 디귿과 리을. 아와 야, 어와 여.

24개의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그래도 지금의 내가 쓰는 글이라면 초등학생때 썼던 일기보단 잘 쓰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며 길었던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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